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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시니

Debbylovy 2016. 11. 2. 01:33

어떤 길로 그분 따르고 섬겨야 할지

다 알지 못해 마음 답답하지만

나의 계획과 방법 욕심의 짐 내려놓고

오직 주만 의지하게 하소서.


앞날의 두려움 나의 삶의 안락함

다 내려놓고 가장 낮은 곳에서

오직 그분 나의 가는 길 홀로 아시는

내 주님만 의지하고 따르리


오직 그분, 나의 가는 길 홀로 아시는

그 분만, 의지 하리. 

변함 없는, 신실하신 그 뜻대로

이루시리라


죽기까지 순종하신 내 주님의 십자가

아직도 난 너무도 모르니

그 고난의 비밀 몸으로 배우게 하사

주님 가신 길 따르게 하소서.


나의 작정하신 것 이루시리라.

그분의 시간에 이루시리라.

그가 아시니.


-강명식 찬양, '그가 아시니' 중...



훈련을 시작한 지 딱 8개월이 되었다.

내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복음성가 중 한 곡이었던 이 찬양을

훈련 중 흥얼거리게 되는 시기들이 때마다 있었다.


초기에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복도를 닦으면서 읊었다.

차 안에서 읊었던 것도 같고, 기도실 어둠 속 작은 빛 속에서 읊었던 것도 같다.

오늘도 이 노래가 절로 불러진다.


내가 나를 모른다

하나님은 내 길을 아신다.

그러니 나를 도와주시라고 기도한다.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걸 인식할 때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그런데 나를 아는 신이 있고, 그에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자비와 감사인지.


내가 갈 길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길을 아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옛날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오늘은 조금이나마 감을 잡아본다.

페이스북에서 스크롤바나 내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 시간에도 내가 보게 하시고 내가 듣게 해주신다.


한 외국인 목사님의 설교목소리로 '기도의 목적' 에 관한 짧은 영상과,

고 옥한흠목사님께서 설교하신 '짐 엘리엇의 삶'에 대한 설교.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는 고민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아신다

대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왔지? 물음을 던졌다.  

또한 스물여덟 청년에 살인족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가서 순교한 짐 엘리엇과 네 친구들, 당신은 누구와 비교하며 살고 있느냐는 설교자의 목소리에 또 한번 나는 누구와 비교하며 살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이 복이라며

어서 자신을 주의 일을 하는 데에 써달라고 간절히 매달렸다는 그 청년을 선배로 바라보자.

나는 종종 짧고 굵게 살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 죽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미있는 죽음이길 소망한다.

부끄럽게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올 초 겨울에 적어놨던 문구에, 

내가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겸손해지는 것 같다고 썼던가.

그 말을 기억하면서 오늘을 돌아보면 

내가 죽었을 때 나의 자리를 치우는 누군가에게 

지저분한 흔적 남지 않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휴... 나는 너무 지저분하다. 정리를 잘 못한다.


그리고 종종 욕심이 든다.

더 많이 보고싶고 듣고싶고 체험하고 싶고.

욕심은 불만을 낳는다.

그러지 못할 형편이라는 것을 보게 만들며

다른 수를 써서 욕심을 채워볼까 생각을 한다.


그렇게 욕심은 내 속을 시끄럽게 만들고,

결국 그 하루는 소음으로 가득찬 채 잠자리에 들 때까지 힘겹다.


오늘도 그랬다.

그러나 감사하다.

요한계시록을 한 번 읽고, 또 우리말성경으로 한번 더 몇장 읽었다. 그렇게 어렵고 피하고 싶었던 요한계시록을 읽고 싶어지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보여주신 두 영상으로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짧은 저녁예배 시간동안 불평했던 것을 회개 고백하고,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점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깊이있는 점검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어렴풋이 들은 사이렌에 경각심을 가졌달까,

허상에서 깨어나라고 흔들거리는 누군가의 손짓을 느낀 것 같다.


최근에 나의 상상력은 이미 훈련을 마치고 복학하여 재미지게 살기 위한 방도를 구하고 있었다. 집은 어디서 살까, 친구들을 초청해서 매일 밥이 있는 재미있는 집을 살아보자, 운동을 다시 하고 싶은데 어디서 할까, 농사를 짓고 싶기도 하고,,, 운전면허와 메이크업 헬스트레이닝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이런. 여전히 공부는 안중에서 멀다. 연극도 해보고 싶고 춤도 배우고 싶고...


나도 예쁘고 잘나고 연애하고 사랑받고 싶다.

아직도 이 알고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나는 훈련생이다. 

훈련생은 훈련생이기에 지켜야 할 규정과 받아야 할 훈련이 있는데

규정과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훈련생은 그것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 모르니까 훈련하는 것이다.

... ...

때로 나 스스로 '훈련생이기에' 금지하고 자제하는 것들이 마음속에서 폭발할 때면 속마음은 매우 불편하여, '너나 잘해'라는 말이 속으로 튀어나오곤 한다.


훈련생, 잘 몰라서 배우고 싶고 좋은 쪽으로 변하고 싶으니까 

고되고 아파도 훈련을 받는 것이다.


과연 훈련 일년 후의 내 삶에서 나는 바뀌어 있을까?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을까?

하하, 아직도 금방금방 돌아가버리는 걸.


아무튼 오늘 나는 이 시간이 좋아졌다

아무 곳에 가지 못하니, 할 일도 없으니

빈둥거릴 때를 지나니

오늘 성경을 읽게 되었고,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일과로서 있다는 것이 또 언제 이런 날이 올까 싶을 만큼

좋고, 나의 모든 삶에 있어 유익하기 때문이다.


 섬겨주시는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감사하며...



-시월의 마지막 밤에 작성. in Uganda.